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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
작성자 : 임준제
작성일 : 2017.09.28 / 조회수 : 2882

(신학세미나 강의 Ⅱ. 기독교 영성)

Ⅰ. 기독교 영성의 성경적 근거(요 6:63)

요한복음 6장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성경 말씀이 생명이요 영이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영의 기능과 사역을 연구하는 신학의 분야의 하나인 영성신학은 신학의 여왕이다. 혼탁한 영적 현상에 일어나는 잘못된 영성을 탈피하고 올바른 성경적인 영성 개념을 정립하고 영성의 바른 이해와 가르침으로 성도의 삶에 적용하는 데 목적을 둔다.

신학의 여왕이고 힘(축)을 이루는 영성신학이 중심되어 성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으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영성신학은 모든 신학의 핵이요 신학의 축이다. 미래신학에서 큰 과제는 영성 문제이다.

영성문제는 영적 스타일 신학의 문제이다. 오순절파는 카리스마적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 카리스마 신학이 가지고 있는 영성과 힘찬 역동성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오순절파의 카리스마적 신학이 좋은 것이 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스타일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외관상 보이는 것과 달리 이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신학이 있다. 그들의 영적 신학의 스타일이 위험한 것은 능력의 영성(Power Spirituality)이다. 가견적인 것만 생각한다. 항상 결과를 중요시한다. 성경적인 영성이란 무엇인가? 시편 기자의 간구처럼, "언제까지 이렇게 하시렵니까?" 고통 가운데 인내하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의(義)와 순종(順從)의 영성을 말한다. 죄와 싸움은 매일의 싸움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무장이 필요하다. 선(善)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 카리스마적 신학의 영성이 활발한 것에 대해 부인할 필요 없다. 그렇지만 기독교적 영성에는 통전적(通傳的), 영속적 (永續的) , 총체적 (總體的) , 전인적 (全人的) 영성을 아울러 통합적(統合的) 영성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영성교육은 통전적, 영속적, 총체적, 전인적(wholistic)으로 종합한 통합적인 차원의 영성(Spirituality in Wholeness) 접근방법이어야 한다. 통합성은 광범위성, 포괄성, 동일성과 상이성 등 다양한 사회 문화적 배경, 역사적 상황을 깊이 고려해 영적 성숙의 실현상태를 포함한다.

1. 기독교 영성

최근 개 교회에서나 신학 교육현장에서 영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예로써 '영적인 삶', '영성', '영성훈련', '영성신학' '영성교육' 등과 같은 단어를 주위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개인의 생활 속에 깊이 적용되지 못한 채 단지 교리적 가르침이나 예배의식의 반복으로 이어지는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懷疑)를 들 수 있다.

둘째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기독교의 깊이 있는 이해와 체험 부족으로 인한 내면적 갈급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셋째로, 산업화, 현대화, 과학화, 세속화로 대변되어지는 현대인의 삭막해진 영적 상태를 신앙생활을 통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깊은 기독교적 삶의 추구라는 좋은 동기에서 '영적인 삶', '영성', '영성훈련' 등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애매모호하게, 그리고 또한 잘못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일이다. 특히 이 용어들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교회들의 오해는 영성을 육이나 물질에 대비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한 신적 실체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시킴으로써 비롯된다. 즉 영성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에 대한 것만으로 이해함으로 영적인 삶이나, 기독교적 영성 생활을 일상생활과는 격리된 신비적 세계에만 속한 어떤 것으로만 이해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영성에 대한 관심은 신앙의 내실화라는 점에서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과학화와 산업화로 피폐해진 현대인들에게 깊은 삶의 체험과 통합적 삶으로의 안내라는 역할은 신앙의 세계만이 감당해낼 고유한 영역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영성의 개념에 대한 오해는 잘못된 영성 추구로 인한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성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시정하기 위하여 먼저 영성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다음에 기독교 영성의 개념을 규정하며, 기독교 영성이 어디에 기반을 두고, 또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영성의 의미

영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기독교 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성에 대한 정의를 말한다면, " 영성이란 인간의 삶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확신에 따라서 사는 한 개인이나 한 공동체의 삶의 스타일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정의는 영성에 있어서의 두 가지 면을 분명히 제시해주고 있는데, 첫째로, 영성은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믿음의 체계 즉 이해의 체계라는 것이다. 둘째로, 영성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체계로 끝나지 않고, 그에 따라 사는 삶의 구체적 표현의 체계 즉 실천적 체계이다. 한마디로 모든 영성은 나름대로의 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해에 따른 삶의 구체적 표현, 즉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인간만이 영성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만이 영성적 동물이다. 소나 말과 같은 동물들도 나름대로의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되면 배고픔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면 먹이를 구하려는 구체적 행동을 할 것이다. 때가 되면 생식 욕구를 느끼고 그 충동에 따라서 행동하게 된다. 벌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여도 벌이 삶의 가치와 목적에 대한 확신에 따라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본능에 따라서 열심히 일할 뿐이다. 동물들의 삶의 패턴은 삶의 목적과 의미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충동과 감각에 따라서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에 따라서 삶을 추구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일에 자신의 열정을 쏟는다. 예술가는 미(美)에 지고(至高)의 가치를 두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자신을 헌신할 것이요,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가 제시한 가치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투자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만이 영성적 동물이다.

일반적으로 영성에 대한 정의는 삶에 대한 이해와 이에 따른 구체적 표현의 두 부분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영성은 단순한 지식이나 이해가 아니요 삶의 본질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에 따라서 사는 삶의 형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여 통합성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을 분석해보면, 지적인 차원, 정서적 차원, 의지적 차원 세 가지의 차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차원적 요소들이 인간 속에서 봉합되어지는 것을 가리켜 통합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성이란 맹목적 행동주의도, 단순한 감정주의도 아니며, 또한 단순한 지식이나 도그마의 체계도 아닌 인간의 세 가지 차원 즉 지적 차원, 정서적 차원, 의지적 차원이 연속성 속에서 통합되어진 구체적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영성들을 열거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영성, 유대교 영성, 이슬람교 영성, 불교 영성, 힌두교 영성, 유교 영성과 같은 종교로 분류되는 영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공산주의 영성, 과학주의 영성, 세속주의 영성, 자연주의 영성과 같은 종교 이외의 범주에 속하는 영성들이 있다. 또한 위에 열거한 영성들도 무한히 세분화되어질 수 있는데, 그 예로 기독교 영성은 개신교 영성과 천주교 영성으로 그리고 개신교 영성도 신앙의 전통에 따라 극히 세분화되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영성들의 특징은 각 영성이 이해하고 있는 궁극적 실체에 대한 이해에 따라 결정되며 이러한 궁극적 실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그 영성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한 예로 불교 영성에서 이 세상은 실체가 아니고 허상이며, 실체는 진리를 깨달은 마음뿐이다. 그러므로 불교 영성에서 이 세상에 대한 추구는 허상에 대한 추구일 뿐 가치가 없는 것으로 관조적, 도피주의적 특징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 명상을 통한 마음이라는 실체를 추구하는 유심론적(唯心論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있어서 실체는 하나님이며, 참 실체이신 하나님을 통하여 이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과 피조물이 절대적 실체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창조되었으므로 가치가 있으며 그 가운데 인간은 절대적 실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인간의 삶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에 대한 추구는 가치 있는 일이나, 절대적 가치화되어질 수는 없다. 피조물의 세계를 절대적 가치화시키는 것은 우상 숭배이며 그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죄악으로 간주되어진다. 한편 세속적 인본주의 영성에서의 궁극적 실체는 인간 자체가 된다. 그들은 인간 이상의 궁극적 실체를 인정치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궁극적 실체는 인간 자체이다. 그러므로 궁극적 가치란 결국 인간의 행복감으로 귀착되게 된다. 삶에 있어서 궁극적 실체를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삶의 추구와 그 모습은 철저히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와 같은 이해 속에서 영성은 삶의 구체적 모습을 결정짓는다고 말할 수 있다.

2) 기독교적 영성 이해가 아닌 것들

목회의 방향을 전환하게 만드는 기독교 영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잘못 이해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기독교 영성이라는 말을 반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영성 이해가 아닌 것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영성(靈性)이라는 한자 단어의 뜻을 그 대로 해석하여, 영성은 영적인 성품을 우리 인간 속에 함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첫 번째 잘못된 영성 이해이다. 특히 동양적인 종교들은 다같이 내면에 영적이요 신적인 성품을 함양하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러한 동양적인 종교의 사상을 아는 이들이나 그 영향을 받은 자들은 기독교 영성도 기독교인들 안에 영적이요 성스러운 성품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우리는 내면적인 성품 개발을 반대하지는 않더라도 이것을 기독교 영성과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

(1) 이데올르기(Ideologie)적 영성 이해

이데올르기는 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 역사적, 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이다. 이데올로기적 영성은 기독교 영성과 엄격히 구분된다. 이데올로기적 영성은 위대한 정신, 예를 들면 공산주의 정신, 노동자 정신 또는 소크라테스의 정신 등과 같은 것을 나의 정신으로 내면에 받아들여 그 정신을 생활하고 그 정신을 이 땅 위에서 실천하며, 이 세상을 그러한 정신으로 가득하게 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기본 요소가 포함된다.

첫째로, 자기가 볼 때에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정신을 받아들여 그것을 배우고 훈련하고 의식화하여 그 정신을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내면화된 정신을 자기의 삶에서 구현시키기 위하여 삶의 스타일로 바꾼다.

세 번째로, 엄격한 규칙에 따라 고된 훈련을 실시한다. 왜냐하면 그 정신을 내면화시킬 때, 삶으로 실천하려고 할 때, 엄청난 내적, 외적 저항을 만나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적 삶이기 때문에 어떤 정신을 받아들여 사는 이데올로기적 영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2) 펠라기우스(Pelagius)적 영성 이해

영국의 신학자이며 수사(修士)(354?~420?)인 펠라기우스는 원죄설과 유아 세례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은총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을 쉽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펠라기우스적 영성(인본주의적 영성)은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잘못된 영성 이해이다. 펠라기우스는 영국의 수도사로 있을 때 동경하던 로마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로마를 기독교 전도의 중심지로, 신성한 성지로 예상했는데, 와서 보니 도덕적으로 말할 수 없이 타락해 있었다. 이것은 물론 수도사 펠라기우스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윤리회복과 기독교 순수성 되찾기를 부르짖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도덕적인 성품과 열망을 받았으므로, 이 도덕적 성품과 열망을 다시 일으켜 윤리를 회복하고 기독교의 순수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에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께 은혜받기 위하여 먼저 도덕성 회복을 외쳤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자고 했다. 그는 기독교의 방향을 아래서 위로 바꾸어 버렸다.

(3) 한국교회의 펠라기우스적 영성

오늘 한국교회는 기독교 영성을 이야기할 때에 두 가지 점에서 펠라기우스적 영성을 암시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 영성은 우리가 힘을 다해 거룩하게 살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 속에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중심의 영성이요 펠라기우스적이다. 둘째, 기독교인이 노력하여 거룩한 성품을 이루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기도하면 복 받고, 거룩하게 살면 복 받고 봉사하면 복 받는다는 등의 가르침들은 인간의 노력을 하나님의 은총보다 선행을 내 세우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성령의 은사를 받고 은사를 개발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영성 이해 가운데 하나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며, 성령의 은사로 봉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영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령론의 가장 중심적인 이론이 될 수는 있으나 기독교 영성과 같은 것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워치만 니 가 주장하는 영의 사람도 기독교 영성과는 거리가 있다. 위치만 니 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영이 몸을 주장해야 하는데 혼이 몸을 주장하기 때문에 범죄하고 타락하고 육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워치만 니 는 우리의 몸과 영을 훈련하여 우리의 몸이 우리의 영의 지배를 받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몸이 영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을 쓰지 않고 우리 인간(전인적)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영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영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것은 기독교적 영성훈련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영을 거울처럼 맑게 하는 것이 영성이라는 주장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영성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롬 15:16) 하며,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말씀에,

"너희 몸(썩어서 없어질 육체인 사르크스 < savrx> > 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전인격을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소마 < sw'ma > 를 사용함)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3) 기독교 영성의 개념

기독교에 있어서 영성이란 용어에 대한 구약적 뿌리는 영(靈)에 해당하는 단어인 '루아흐'( j"Wr

)이다. '루아흐'( j"Wr )라는 용어는 구약에서 바람, 숨, 생명의 원리, 하나님의 능력 등을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구약에 약 389회 사용되어졌다.

구약에 있어서 영(靈)에 대한 이해를 몇 마디로 요약해보면, 영은 인간이나 생물에게 있어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인간에게 임하는 분으로서 소개되며, 하나님의 영은 인간세계에 임하여 생명을 소생시키고, 공의와 자비를 베풀며, 인간을 변화시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만들며, 또한 능력을 제공하는 본체로서 소개되어지고 있다. 구약에서의 영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면에 있어서 초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초월적 영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인간의 삶 속에 개입하는 내재적 영임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으며, 그리고 또한 인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 있어서 영의 통합적 특성을 들 수 있다.

성경은 이원론적 이해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진흙으로 지으시고(Body)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매(Spirit) 사람이 생령(Living Soul)이 되었다(창 2:7)고 기록하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부분과,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두 부분은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긴밀히 통합되어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물질적인 면을 육(肉)이라 지칭하고, 비물질적인 면을 영혼(靈魂)이라고 할 때 이 육과 영은 구분(분리)될 수 있는(separable) 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라, 구분(분리)될 수 없으나 구별될 수 있는(not separable but distinguishable) 이원성적 존재이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실체이다. 인간의 육체는 땅으로 환원(還元)되어지지만 인간의 영은 영이신 하나님과 영존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 영성은 이원론적인 일면을 지니고 있으나 하나님의 영, 초월의 영은 인간의 삶 속에 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변화를 일으켜서 인간의 삶 전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원론적 이해를 거부한다.

영과 혼은 분리(separable)되는 것이 아니라 구별(distingushable)되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창조론적 영성, 기독론적 영성, 성령론적 영성)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영적 요소 , 이를 기초하여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여 지향하는 종교적 요소 ,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된 삶을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살며 실천하는 윤리적 요소 가 함께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영성은 삼위론적 특색이 있다.

4) 기독교의 영성인 삼위일체론적 영성 이해

삼위일체론적 영성 이해, 그러면 기독교 영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성경적이요, 기독교 역사와 연속성을 갖는 영성 이해는 무엇일까? 먼저 삼위일체론적으로 기독교 영성을 정리하고자 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기독교 영성을 이야기 할 때 두 가지를 중시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에 인간의 내면에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 안에서만 만 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씨를 만들어주셨다.

닛사 의 그레고리는 이것을 ' 하나님을 지향하는 인간의 사랑 '이라고 했고, 어거스틴 은 이것을 하나님 안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는 ' 인간의 속성' 이라고 했으며, 칼빈 은 ' 하나님 지식의 씨' 라고 불렀고, 파스칼 은 하나님이 만드신 ' 영적 공간' 이라고 했다. 어반 홈즈(Urban T. Holmes)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 관계적 동물' 로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에 영성을 갈망하는 씨앗을 심었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응답하며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때에 영접할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신다.

마태복음 6:33에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영적인 삶이요,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인애의 삶이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자연으로 회복시키는 삶이요, 이 사회 속에 정의를 구현하는 삶이다. 성부론적으로 우리가 기독교 영성을 이해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명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삼위론적 특색이 있다. 기독교 영성의 삼위론적 요소를 다음의 세 가지로 기술할 수 있다. 즉 창조론적 영성(성부), 기독론적 영성(성자), 성령론적 영성(성령)이다.

(1) 창조론적 영성 이해 : 성부론적 창조 사역

기독교의 영성은 창조자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지혜, 창조자의 능력, 인간을 향한 창조자의 뜻, 초월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 등이 기독교 영성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경배 드리며 창조자의 뜻을 실현하는 삶으로 초대한다. 창조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영성은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 세계의 질서와 법칙에서 하나님의 본질과 뜻을 읽을 줄 아는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우주는 닫혀진 체계(closed system)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이 세계와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기적을 베푸는 열려있는 체계로서(open system)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계적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진리를 항상 인정하며 세상을 바라다보는, 이 세상 너머의 세계에 열려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영성인 것이다. 하나님의 행위는 영원한 현재이다.

창조자 하나님은 또한 초월자이시다. 초월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인간의 삶을 얼마간 살다가 없어질 유한적 삶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존재로 믿는다. 그리하여 정서적으로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속감을 깊이 경험하며, 또한 삶의 추구에서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궁극적인 것으로써 추구하며 산다. 기독교의 영성은 다가 올 세계를 앙망하기 때문에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이 세상의 참된 존재 의미와 목적, 가치 그리고 그 한계를 바로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을 바르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한다.

(2) 기독론적 영성 이해 : 성자론적 구속 사역

기독론적 특징이란 인간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죄로부터의 구원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을 완성시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의미한다. 기독론적이라 함은 성육신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되어졌다(롬 5:1-10; 고후 5:11-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로까지의 철저한 회복이며(롬 8:12-17; 갈 4:6). 이 관계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수직적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이웃과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의 회복까지도 의미한다. 성육신 영성은 비움과 충만이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빌 2:5-8; 마 4:1-11). 비움 없이 충만이 없고 죽음 없이 부활이 없으며, 십자가 없이 영광이 없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비움은 기독교적 충만을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단계이며, 우리는 참된 삶을 경험하기 위하여 먼저 옛 사람의 죽음을 통과하여야 한다(롬 6:1-11).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부론적 영성을 강조한다면 개신교회들은 기독론적 영성을 강조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델이다. 우리 삶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이 곧 기독교 영성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삶과 사역을 우리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삶이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의 영성의 모델일 뿐 아니라, 오늘 우리 가운데 다시 오셔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귀며, 예수와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관계적 삶이 곧 기독교 영성이다.

(3) 성령론적 영성 이해 : 성령론적 역사, 인도, 사역하시는 보혜사(Counsellor)

성령님은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분이시다. 성령님은 우리의 무지한 의식을 깨우쳐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하시는 분이다. 또한 인식된 진리를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하는 분이시기도 하다. 우리를 위로하며, 인도하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케 하는 분이시며 우리를 은혜 안에서 살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감당해낼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분이시다. 이러한 성령론적 영성은 기독교관의 내재적 특징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초월자 하나님으로만 동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신비스럽게도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얼마나 깊이 통합적으로 이해하며, 또한 이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 영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성령론적으로 영성을 이해할 때에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 중심의 영성으로 바뀐다. 성령은 오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본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즉 하나님의 삶이다. 우리 자체로는 하나님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 수 있는 삶이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삶을 살게 힘주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으면 예수님의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는 삶의 과정이다.

5) 기독교 영성의 요소들

삼위일체론적으로 기독교 영성을 요약하면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 갈망의 씨앗을 개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이요,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모델로 따라 살며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는 관계의 삶이요,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이루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델을 구현시켜 나아가는 삶이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삶의 방향을 지향하는 종교적인 요소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요소와, 하나님을 만나서 새롭게 된 삶을 이 땅 위에서 구체적으로 살며 실천하는 윤리적 요소가 함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도표로 그리면 아래와 같다. 이 도표는 하나님과 만나는 영적인 요소에 기독교 영성의 바탕이 있음을 암시한다. 다른 두 요소는 하나님과 만나는 새로운 삶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몸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의 삶 위에 기독교 영성은 존재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만나시는가? 골방훈련, 성도의 교제, 공동훈련, 참여와 봉사 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는 통로요 수단이다. 이 교육과 훈련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교육과 훈련들을 통하여 우리와 만나시고 애당초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영성)으로 바꾸어 가신다.

(종교적 요소) (윤리적 요소)

하나님께 나아감 새 삶을 실천함

(영적 요소)

성경의 하나님과의 만남

6) 기독교적 영성의 여섯 가지 분야

모든 기독교인들이 똑같은 기독교 영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교회의 전통이나 신학적 신념의 차이에 따라서 영성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와 이에 따른 다양한 추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수없이 다양한 기독교 영성은 그 방향성에 따라서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개인적 경건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이다

이 영성은 개인 기도생활, 말씀 묵상, 그리스도를 통한 확신(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사죄의 확신, 승리의 확신, 인도의 확신) 거룩한 생활, 복음전도 등 하나님 앞에서의 한 개인의 경건한 삶을 기독교적 삶의 가장 중요한 모습으로 이해하는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은 개신교 전통에서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며, 특별히 복음주의에서는 너무나 친숙한 삶의 형태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성결한 삶을 강조하는 것은 이 영성의 가장 큰 특징이며, 또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강조는 바로 이것의 가장 긍정적 특징이기도 하다. 반면에 기독교의 사회적인 면을 그냥 지나친 약점이 있기도 하다.

(2) 사회 참여에 강조를 두는 영성이다

이 영성은 가장 이상적인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을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성도와 교회가 사회의 정치적 문제, 경제적 문제, 인종문제, 여성문제, 성폭력문제, 이념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기독교 영성의 가장 핵심적 본질로 본다. 이것은 진보적 교회들의 영성의 모습이다. 위의 두 가지의 전통들(개인적 경건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과 사회참여에 강조를 두는 영성)은 서로 다른 강조점으로 양극단을 이루는 것처럼 갈등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또한 서로 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러한 영성은 기독교와 사회와의 관계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지나, 반면 개인적 경건을 유치한 수준의 것으로 여기는 경향은 배제되어야 한다. 개인적 경건 없는 사회적 경건은 자기 성찰 없는 행동주의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이다

이 영성은 깊은 기도와 명상 그리고 금식을 통한 하나님과의 직접적 만남의 경험을 통한 영적 연합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삼는 영성을 말한다. 이것은 일상생활을 탈피하여 영적 실체인 하나님과의 지속적 연합을 갈망한다. 그 결과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을 탈피하여 온전히 하나님과 보낼 수 있는 수도원적 삶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수도원운동, 기도원운동 등이 바로 이 부류에 해당되어지며, 이것은 한 개인의 영적 경험이라고 하는 주관주의적 특색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 개인의 느낌이나 영감이 절대적 계시로 오해되어 오류적 계시의 범람이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영성은 교회가 영적으로 침체되었거나, 너무 조직화되어 생명력을 잃었을 경우, 교회가 너무 윤리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쏟을 경우, 타락했을 경우, 또는 사회적으로 심히 혼란할 때 일어나는 영성 운동이다. 이러한 영성은 기존의 성도와 교회에 도전하여 영적 각성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즉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역동적으로 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며, 이런 믿음은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을 깨우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반면에 신비주의는 극심한 영적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 핵심은 극단적 주관주의에서 비롯된다. 즉 한 개인의 느낌이나 영감이 절대적 계시로 오해되는 계시의 범람이 있을 수 있으며, 여기에서 비롯된 문제들은 실로 심각하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첫째는 개인적 경건에 강조를 두고 기독교 교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지적 특징을, 둘째는 신비주의는 주관적 감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감정적 특징을, 셋째는 사회 윤리적인 삶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지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4) 전인성을 향한 개인의 성장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이다

(spirituality concentraing personal growth toward wholeness)

이 영성의 전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인성에 대한 잠재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의 목표를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전인성(wholeness)을 회복하는 것으로 본다. 전인성의 회복이란 자기실현, 자기성취, 창조성의 발현, 생명력이 넘치는 삶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생의 모든 경험을 전인성의 회복이란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인생의 다양한 경험 등을 자신의 전인성(wholeness)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으로, 특별히 이 영성은 자기실현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현대인들에게 호소력 있는 영성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점은 영성의 출발점이 하나님 대신에 인간에게서라는 것으로 오해되어질 소지가 있다는 것과 영성의 목적이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아닌, 한 개인의 삶과 능력 계발에 귀착(歸着)되어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 기독교 영성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전인성을 강조하는 영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타나는 문제는 현대인들의 자기 성취에 대한 욕구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지고 결론되어지는 영성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자신의 가치와 잠재력을 발견하고 자신의 존재를 통합해나가는 영성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5) 영성을 관계 이해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이다

이 영성은 영성을 자기 자신, 하나님 그리고 공동체, 이 삼자간의 관계라는 면에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나 자신을 하나님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적 존재로 봄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영성들의 강점들을 포용하게 된다. 나 자신을 하나님과 관계되어진 존재로서 이해하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의 빛 앞에서 자신을 비쳐보는 개인적 경건을 중요시 여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 자신의 한계와 죄성을 깊이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외와 자신에게는 깊은 내적 성찰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즉 기독교적 신비 체험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는 영성이다.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을 경험하는 신비적 연합을 추구하며, 이 신비적 연합이 건전한 신비적 체험으로 유지되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성을 삼자간의 관계로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즉 신비적 연합의 위치를 알고 그것만을 절대화하지 않음으로써 조화 있는 영성 추구가 가능한 것이다.

관계적 영성은 하나님과 한 개인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관련지어주신 공동체와의 연관성 또한 중요한 영성의 요소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공동체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공동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공동체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며, 하나님으로부터 공동체에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6) 관계적 영성은 전인성 회복의 면도 포함하고 있다(포괄적인 영성)

한 개인에게 주어진 자기실현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신의 전인성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되어지기를 기대하는 영성이다. 관계 이해의 영성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성을 하나님, 자기 자신, 공동체 이 삼자간의 관계로서 이해할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는 포괄적인 영성 추구가 된다.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는 영성은 충격 요법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복음주의 기독교 영성도 삼자간의 관계라는 면에서 기독교 영성을 이해할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우리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제까지 기독교 영성에 대한 정의와 기독교 영성의 핵심적 요소를 기술했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종합해서 기독교 영성에 대하여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영성은 삶의 궁극적 실체이신 하나님과의 만남(encounter)을 통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요,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만남이며, 이 만남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목적의식을 갖게 하며 또한 삶에 대한 새로운 정서로서의 수용됨을 체험케 한다. 또한 영성은 새로운 이해와 내면적 수용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그리하여 궁극적 실체, 자기 자신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관련적 이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 삼자(三者)들에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 영성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기독교 영성의 첫 번째 특징은 통합성이다. 기독교 영성이란 단지 머리로써 교리에 대한 이해나, 광신적 감정으로서 또는 맹목적인 행동주의가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이 함께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믿음 그리고 믿음의 결단에 따른 행함이 함께 작동하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지향점인 것이다(마 15:10; 7:15-29; 막 4:1-9; 약 1:22; 롬 2:13; 계 1:3).

두 번째,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영성은 삼위론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삼위론적 영성의 특징이란 창조론적 특성, 기독론적 특성, 성령론적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 영성은 관계적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과의 만남은 진정한 자기 본질과의 만남의 경험을 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형성된다. 이 관계는 또한 한 인간과 주위 환경과의 새로운 관계로 인도한다. 즉 자기 자신, 하나님, 주위 환경(공동체)이라는 삼자들 간의 새로운 관계맺음과 표현이다.

네 번째, 기독교 영성은 영적 실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 존재인 인간 사이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이 세상을 초월해 계신 초월적 영적 실체이다. 그리고 초월적 영적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찾아오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뒤에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의 삶 속에 찾아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인간과의 교제를 나누길 원하며 이것은 인간의 일상적인 경험의 세계를 넘어선 초월적 영적 실체와의 나눔인 신비적, 초월적 교제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영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초월자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경험케 하시며, 소원케 하는 분이다.

다섯 번째, 기독교 영성은 선교적이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진리와 생명력이 자기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나아감이 없는 영성은 반드시 타락하게 된다. 나아감은 기독교 영성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끝으로 아쉬운 점은 기독교 영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은혜적 본질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아무쪼록 기독교 영성에 대한 관심과 진지한 논의를 통하여 우리 모두와 교회가 영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체험이 있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Ⅱ. 영성 단계의 성경적 근거(벧후 1:1-11)

베드로후서 1:3-4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의 생활목표를 말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비한 능력을 생명과 경건(영성)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으며 이는 영광과 덕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앎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매일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추구함으로써 인격 전체가 하나님을 닮는, 즉 성화에 이르러야 한다. 우리가 성화되도록 하는 두 가지 요소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세상적인 것을 버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주 예수를 앎으로 말미암아 그것에 따르는 기독교인의 특권에 대한 설명으로 기독교인은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주어진 생명과 경건에 의거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음을 밝힌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성도(제자)들이 미래의 일들 즉 그리스도의 재림(벧후 3:4,9,12),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벧후 1:11)에 참여케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와의 참된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교제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됨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거듭나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누며(요 14:16-17,26).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롬 8:18).

1) 영성 성숙 8 단계

그러면 영적 성숙(영성의 단계)의 과정을 살펴본다.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영성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이해가 아니라 확신 가운데 사는 삶의 패턴이다. 영성이란 맹목적 행동주의, 단순한 감정주의, 단순한 도그마( dovgma , 교리, 지식) 체계가 아니라, 초월과 내재가 일치하는 총체적(내면적 영성인 자기부정과 표면적 영성인 십자가 고난극복을 말한다), 전인적(지정의) 통합성(광범위성, 포괄성, 동일성과 상이성 등 다양한 사회 문화적 배경, 역사적 상황을 깊이 고려해 영적 성숙의 실현상태이다)의 결여된 영성은 참다운 영성이 아니다. 기독교 영성은 전인적 차원의 종교적 잠재능력이 실현되는 상태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에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이 셋이 함께 어울러져 조화를 이루는 영적 성숙 상태이다.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여 성숙을 돕는 행위로서 인간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얻기보다는 성령에 따라 인도되는 신뢰(확신), 기다림, 수용성과 확장된 의식에서 이루어지는 초월적 경험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는 성화(sanctification) 과정에 있어 중요한 열매들이 있다. 이는 곧 믿음의 진위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된다(마 7:15-20; 약 2:14-26). 이 열매들은 영적 성숙과정에서의 점진적 발전 단계이다. 소명 받은 영적 성숙단계이다. 영성과정은 통전적, 영속적, 총체적, 전인적(wholistic), 통합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발전 계발된다. 영적 성숙 단계의 과정을 살펴보자.

1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믿음의 단계

베드로후서 1:5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믿음의 단계이다. 믿음의 단계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부터 시작된다( 롬 10:9-10). 하나님의 선물로서 성도의 신앙생활의 첫 관문인 믿음은 그리스도의 삶의 밑바탕이다(롬 7:21-27; 히 10:22).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9).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되며 세상과 썩어질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됨이다(벧후 1:4). 따라서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삶의 기초가 된다(롬 5:1; 히 11:1; 유 1:20). 베드로는 이 '믿음'에 '덕'을 공급하라고 권면한다.

'믿음에'( pivstei , 피스테이)는 인격의 견실함으로서의 성실성을 의미하며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성실하시다. 구약에서 믿음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일차적인 행위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다. 신약에서는 복음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관계로서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 등에 사용된다. 믿음은 선행이 아니다. 하지만 믿음은 순종의 특성을 지니는 행위이다. 믿음은 그 자신의 능력이나 스스로 획득한 의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에 대한 지식은 말씀 안에 거함으로써 주어진다(요 8:32). 그러므로 지식은 믿음의 적이 아니며 지식과 믿음은 동일한 목표를 추구한다. 성도들은 믿음에 의해서만 이 세상을 극복할 수 있다.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Ⅰ : 믿음의 단계

1. 믿음의 성격

1) 바라는 것들의 실상임( 히 11:1)

2) 예수께서 믿음의 주가 되심( 히 12:2)

3) 율법의 행위와 대조됨( 갈 2:16

2. 성도가 믿어야 할 내용

1)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함( 히 11:6)

2)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함( 요일 5:5)

3)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함( 요일 5:1)

3.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믿음(엡 2:8)

4. 이미 전제되어진 믿음

5. 모든 것의 기본인 믿음( 막 1:15)

6. 믿음에 힘써야 할 성도

1) 복음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함( 행 15:7)

2)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함( 막 16:15-16)

3)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로 기도해야 함( 눅 22:32),

성경 인물의 예 1) 아브라함의 믿음

1. 부르심에 순종한 믿음(창 11:31; 12:1-3; 히 11:8)

2. 후사의 약속을 신앙하는 믿음(창 18:12,21,22; 갈 3:6)

3.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가진 믿음(창 14:17-20; 히 7:2,3; 요 8:56; 롬 4:1-12; 마 1:1)

4. 비전 있는 믿음(히 11:1)

5.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창 15:4,5,17)

6. 살아있는 믿음(약 2:22)

성경 인물의 예 2) 욥의 믿음(욥 13:14-19)

1. 절대적인 믿음

2. 정직한 믿음(욥 13:16,18; 1:8; 요 8:44l 시 25:8; 92:15).

3. 담대한 믿음-(욥 13:18,19; 수 1:6; 요 16:33)

4. 영원한 믿음-(요 11:25,26; 6:68)

2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덕의 단계

베드로후서 1:5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덕의 단계이다. 덕의 단계는 어둠으로부터 분리이다( 벧전 2:9 ). 그리스도를 닮음으로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신 성품을 따라 모든 일에 선을 추구하는 용기를 말한다. '덕'( ajrethvn , 아레텐)이란 아레테가 기본형으로 많은 의미들을 지닌다. 성취나 재능에 있어서의 '탁월함, 용맹스러움, 장점' 등의 의미와 헬라계 유대교에 있어서와 동일시될 수 있는 철학적인 덕 혹은 명성 등의 의미를 지닌다. 70인역에서는 이 단어를 탁월함이나 명성이라는 의미로만 사용한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이 단어가 극히 드물게 사용되고 있다. 빌립보서 4:8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태도를 서술함에 있어서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라는 문구 다음에 이 단어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종교적인 성격을 띤 경우를 여기서 사도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의인들이 그들의 삶과 죽음에 있어서 항상 지녀야만 할 탁월함이었다. 바로 이런 점이 베드로후서 1:5에도 적용된다.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Ⅱ : 덕의 단계

1. 덕의 의미(벧전 2:9; 빌 4:8)

2. 덕의 특징

1) 이웃을 기쁘게 함(롬 15:2)

2)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님(고전 10:23)

3) 방언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움(고전 14:4

3. 덕을 세우는 방법

1) 사랑으로 덕을 세움(고전 8:1)

2) 선한 말을 해야 함(엡 4:29)

3) 신령한 것을 사모해야 함(고전 14:12)

4) 마음의 정결을 사모함으로(잠 22:11)

5) 타인의 유익을 구함으로(고전 10:23-24)

4. 성도들은 항상 덕을 세우기를 힘써야 함

1) 정결한 마음을 사모해야 함(잠 22:11)

2)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해 덕을 세우는 자임(고전 14:3)

3) 모든 은사는 덕을 위해 사용해야 함(고전 14:26)

4) 성도는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함(롬 14:19)

5. 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함(벧전 2:9)

6. 덕목들을 실천하기 위한 성도가 지녀야 할 성품이 있다(눅 1:75)

1) 정직성이 있어야 함(시 16:8)

2) 공의로움이 있어야 함

3) 진실성이 있어야 함

4) 강직성이 있어야 함(롬 13:7)

5) 겸손함이 있어야 함(고후 4:7)

6) 신실성이 있어야 함:

3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지식의 단계

베드로후서 1:5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지식의 단계이다. 칼빈(John Calvin) 신학의 중심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슴으로 느끼지는 것이 없는 머리만의 지식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지식'( gnw'si" )은 기독교인이 덕(의) 있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 또는 '통찰력'을 말한다(롬 15:14; 고전 13:2; 벧전 3:7). 이것은 점진적으로 획득되어진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판단력, 이해력이다. 빌립보서 3:7-9에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한 바울의 강론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과 그것을 얻는 방법이다.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Ⅲ : 지식의 단계

성경적인 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빌 3:7-9)

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의미(意味)'(정의)

1)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는 것(딤후 3:15-17)

2) 그리스도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

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는 방법

1) 율법의 무익함을 인정해야 함

2) 공로의 무익함을 인정해야 함

3)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어야 함(빌 3:8)

3.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주는 유익(축복)

1) 안식처를 얻게 함

2) 의롭다함을 입음

3) 영생을 허락받음(요 17:3)

4.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식과 지혜의 가치(보배)(엡 1:8,9; 벧전 2:6)

5.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식과 지혜의 특징(감추어져 있는 비밀)(전 2:6,7; 마13:17)

6. 참지식과 지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사 11:2).

4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절제의 단계

베드로후서 1:6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절제의 단계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성도들이(벧후 1:10)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신앙의 미덕들을 열거한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등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들의 성화 과정에 있어 중요한 열매들이다. 이는 곧 믿음의 진위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된다(마 7:15-20).

절제( ejgkravteia , 엥크라테이아)란 하나님을 안 자가 계속해서 자신을 바로 파악하고 자신을 매사에 통제할 수 있는 힘이다. '절제'는 고대 그리스 사상과 헬레니즘의 철학적 윤리학에서 높이 평가되는 덕목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절제는 육체적 욕망의 지나친 방종과 이방 세계의 성적 남용(濫用)에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뤄지는 성령의 열매에 속한다(갈 5:22-23; 행 24:25; 고전 7:5; 9:25; 마 6:19-2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절제하여 하늘에 투자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21에서 형제를 위한 절제의 삶을 말한다.

강한 형제가 연약한 자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절제해 줄 것을 가르친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 양심이 자유한 자유자가 된다( 고전 7:22).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고전 10:31)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고 권고했다. 지금 우리도 사도 바울 시대처럼 먹는 것으로 인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믿음이 강한 자에게는 그것이 아무 문제가 아니 되어도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형제를 위한 절제의 미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행함이 따르는 믿음을 강조했다. 때문에 믿음이 강한 자가 형제의 믿음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절제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 형제를 사랑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과연 아름다운 일이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버려서 사랑한다. 절제는 사랑의 행위이다.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Ⅳ : 절제의 단계

성경적인 예) 형제를 위한 절제의 삶(롬 14:21)

1. 절제(잠 25:28; 왕상 11:1-4)

1) 절제는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고전 7:5).

2) 절제는 '극기'로 제 욕심을 스스로 억누르는 것을 말한다.

3) 절제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잠 16:32).

4) 절제란 '자기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을 말한다(고전 9:27).

5) 절제란 '지나치지 않는 것' 혹은 '과(過)를 피하는 것'을 말한다(전 7:16).

6) 절제란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롬 12:3).

7) 절제란 '정절(貞節)' 즉 '굳은 마음', '변화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딤전 2:9-10,15).

8) 절제란 '자아를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시 39:1-2).

9) 절제란 '자신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벧전 2:11).

10) 절제란 '근신하는 것'을 말한다(살전 5:6-8; 딤후 4:5).

11) 절제란 '자기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12) 절제란 '자기의 선한 의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2. 절제하는 이유

1) 승리하기 위해서 절제해야 한다(고전 9:25)

2) 마귀한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 절제해야 한다.

3)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절제해야 한다.

4)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절제해야 한다.

5) 좋은 신앙인이 되기 위해 절제해야 한다.

6)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기 위해 절제해야 한다.

3. 무엇을 절제해야 하는가?

1) 마음을 절제해야 한다(잠 16:32)

2) 생각을 절제해야 한다(롬 12:8).

3) 음식을 절제해야 한다(고전 8:13).

4) 색욕을 절제해야 한다(롬 1:26-27).

5) 물질에 절제해야 한다(잠 16:8; 딤전 6:17-19).

4. 이웃에 대한 절제의 중요성(롬 14:21)

1) 자유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1)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롬 14:21).

(2) 마시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마 18:6,7).

(3) 형제로 걸려 넘어지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한다(롬 15:3).

2) 절제는 미덕이다

(1) 절제는 자기 부정의 미덕이다(막 8:34; 빌 3:7).

(2) 절제는 사랑의 행위이다(약 2:17,14)

5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인내의 단계

베드로후서 1:6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인내의 단계이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환난에 직면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견디어서 끝내는 승리를 쟁취한다. 연단과 시련의 불도가니를 통하지 않는 온실 속의 영성은 뜨거운 햇빛에도 견디지 못하고 비바람에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영성 소유자가 되고 만다. 고난의 유익은 영적인 축복을 가져온다. '인내'( uJpomonhv , 휘포모네)는 하나님을 신뢰(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삶이 하나님을 경외함이오 이 경외하는 인내가 영성의 원천)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리라고 소망하는 가운데 고난과 악에 대항하여 용기 있게 지속적으로 참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믿음을 지속하는 능력이며 세상 체계의 압박에 저항하는 능력으로(눅 8:15; 롬 5:3; 히 12:2) 환난에 직면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견디어서 끝내 승리를 쟁취한다(고후 1:6; 벧전 4:12-

13; 시 34:19; 사 48:10; 렘 10:19; 롬 5:3-4; 9:17-18; 히 2:10; 히 10:32; 약 1:3; 5:10; 살후 1:4; 딤전 6:11; 벧전 3:17; 계 14:12).

마가복음 13장 12-13절에서는 인내의 축복에 대해 말한다.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하지만, 반면에 가족과 친지로부터 혈육을 넘어서는 매서운 핍박과 저주도 받게 한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12절).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핍박 중 가장 잔인한 핍박은 가족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우리가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 불신 가족으로부터의 핍박은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Ⅴ : 인내의 단계

성경적인 예 Ⅰ) 길이 참는 인내(약 5:8-9)

1. 인내(忍耐)의 뜻

1) 인내는 고통을 기쁨으로 이겨내는 것이다(히 12:2).

2) 인내는 자기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다(히 12:7; 고후 1:6).

3) 인내는 기다리는 능력이다(골 1:11).

4) 인내는 소망의 바램이다(롬 15:4).

2. 인내는 무엇인가?

1) 인내는 길이 참아주는 것이다(약 5:8-9)

2) 인내는 '받침,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다(출 17:12).

3)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롬 13:11; 고전 15:52; 살전 4:15; 요일 2:18등).

3. 하나님은 왜 인내하시는가?

1) 삼위 하나님은 인내의 하나님이시다(출 34:6; 시 103:8; 욜 2:13-14; 욘 4:2; 살후 3:5).

2) 인간을 회개시키기 위해 인내하신다(벧후 3:9; 사 55:6-7; 롬 2:4).

3)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인내하신다(롬 15:5-6).

4) 의로움을 나타내시려고 인내하신다(롬 3:25; 9:22).

5) 오늘도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내하신다(눅 21:19; 빌 2:12).

(1)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이해함.

(2) '그리스도인의 연합적인 차원'에서 이해함(빌 2:4,12; 엡 4:1-6).

성경적인 예 Ⅱ) 인내로 안위하시는 하나님(롬 15:5-6)

1. 성경말씀에서 인내를 배워야 한다

1)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의 인내를 배우게 된다.

2) 성경말씀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인내를 배우게 된다(마 18:21,22).

2. 인내하는 이유

1) 구원을 얻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눅 21:19).

2) 약속을 받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히 10:36).

3) 시험의 때를 면하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계 3:10).

4) 귀한 열매를 얻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약 5:7).

5) 복을 받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약 5:11).

6) 부족함이 없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약 1:4).

7) 결실하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눅 8:15).

8) 연단받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롬 5:3-4; 약 1:3

3. 인내는 언제 필요한가?

1) 환난 때에 필요하다(롬 12:12; 살후 1:4; 눅 21:16-19).

2) 교회를 돌볼 때도 필요하다(고후 12:12).

3)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도 필요하다(딤전 6:11-12).

4) 재림을 기다릴 때도 필요하다(약 5:8).

5) 선을 행할 때도 필요하다(갈 6:9).

6)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칠 때도 필요하다(살전 5:14,; 딤후 2:24-26).

7) 용서해 줄 때도 필요하다(딤전 1:15-16).

8) 믿음을 지킬 때에도 필요하다(계 14:12).

9) 죄악을 대적할 때도 필요하다(계 2:2-3).

10) 승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히 12:1).

4. 무엇을 인내해야 하는가

1) 감정을 참아야 한다(잠 12:16; 15:18; 16:32).

2) 욕구를 참아야 한다

(1) 욕구를 인내하고자 할 때 물욕을 참아야 한다(눅 12:15; 딤전 6:10).

(2) 욕구를 인내하고자 할 때 색욕을 참아야 한다(살전 4:5).

(3) 욕구를 인내하고자 할 때 명예욕을 참아야 한다.

(4) 욕구를 인내하고자 할 때 권세욕을 참아야 한다.

3) 말(언어) 사용을 참아야 한다(전 5:2).

5. 위대한 신앙인은 모두 인내한 사람이었다.

1) 아브라함도 인내했다(히 6:15).

2) 이삭도 인내했다(창 26:20-22).

3) 욥도 인내했다(약 5:11; 욥 42:12-17).

4) 다윗도 인내했다(시 40:1; 119:50).

5) 시므온도 인내했다(눅 2:25).

6) 바울도 인내했다(고후 6:4-6).

6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경건의 단계

베드로후서 1:6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경건의 단계이다.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종교적 요소)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것(영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하나님에 대한 사랑(윤리적 요소)이 결합된 것을 경건(영성)"이라고 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세상에 자신을 방임하는 일을 삼가는 일종의 헌신이다. 경건은 Q.T.일 경우에 말씀과 기도이다. 기도는 살아있는 신앙의 표현이며, 신앙의 영속적 연습으로서 경건훈련이다.

그래서 기도의 삶은 하나님에 대한 심령의 표현이다. '경건'( eujsevbeia , 유세베이아)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헌신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별히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 말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존경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도덕적 생활 방법을 나타낼 때 사용했다. 디모데전서 4:7-8, "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칼빈(John Calvin)의 기독교강요 제1판에 저술 목적이 '경건의 훈련'이라 했다. 칼빈은 디모데전서 4장 8절을 주석하면서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이요 삶의 중간이며 끝이다"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적인 삶의 원리를 말한다(딤후 3:5; 벧후 1:4).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과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누며(요 14:16-17,26), 또한 장차 나타날 영광과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롬 8:18; 벧후 2:9; 미 7:8; 벧후 3:11; 빌 4:8).

야고보 기자는 야고보서 1장 26-27절에서는 참된 경건에 대해서 말한다.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경건이라는 것을 외적인 단정함이라든가, 정숙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정숙함이 경건의 본질이 아니고 실천적인 신앙이 수반되는 내적 정결의 표현이 참된 경건임을 설명하다. 실제로 경건은 우리 마음 자세와 연관되는 것이지 외양적인 정숙함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나 진실보다 외적인 경건이 때때로 크게 부각되고, 그리해 겉모습만을 치장하는 풍토가 만연된 현대에 야고보 사도의 교훈은 실로 중요하다.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Ⅵ : 경건의 단계

성경적인 예 Ⅰ) 참된 경건(약 1:26-27)

1. 경건(敬虔)

1) 경건은 '하시드'로 '하나님을 향해 존경심을 갖는 마음'을 말한다.

(1) 경건을 택하라(시 4:3).

(2) 경건은 보호해 주신다(시 32:6).

(3)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대한 약속이 있다(딤전 4:8).

(4)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짐을 받게 한다(벧후 2:9).

(5) 경건한 자에게 은사를 주신다.

(6) 경건한 자는 영혼이 보존받는다(시 86:2).

(7) 경건한 자는 나중에 승리한다(딤전 3:16,5)

2) 경건은 '유세베이아'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 예배드리는 것'을 말한다(신 6:5).

3) 경건은 '유라베스'로 '좋은 것을 붙잡다'로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성 있는 행위를 말한다.

4) 경건은 '트레스케이아'로 '주를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을 말한다.

5) 경건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돌보아주는 행위를 말한다(약 1:27; 막 12:28).

6) 경건은 세속이 물들지 않는 삶을 말한다(약 1:27).

7) 경건은 언어 사용을 조심하는 것을 말한다(약 1:26; 마 12:36-37).

8) 경건은 주님을 기다리는 삶을 말한다(눅 2:25).

9) 경건은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요 9:31; 약 1:26-27).

2. 경건은 언행이 일치하는 것이다(약 1:27)

3. 경건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약 1:27; 마 25:36,43; 갈 5:6).

4. 경건은 세속(世俗)을 피하는 것이다(약 1:27b).

5. 경건하게 사는 방법(方法)

1) 경건하게 살려면 은혜를 받아야 한다(히 12:28).

2) 경건하게 살려면 힘을 써야 한다(딤전 6:11-12).

3) 경건하게 살려면 경건하게 사는 훈련을 해야 한다(딤전 4:6-8).

4) 경건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시 119:105,9; 요 8:29;

사 40:8; 딤전 4:5).

5) 경건하게 살려면 자족(自足)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딤전 6:6).

7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형제우애의 단계

베드로후서 1:7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형제우애의 단계이다. 공동체의 인간을 향한 희생과 봉사와 섬김, 친절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말하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이 공동체는 사랑, 용서, 나눔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교회는 공동체로서 은혜의 나눔이 있는 예배가 있어야 한다. 진리의 나눔이 있는 생명과 성령 교육이 있어야 한다. 섬김의 나눔이 있는 봉사가 있어야 한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 복음의 나눔이 있는 선교의 열정이 있어야 한다. '형제우애'( filadelfiva , 필라델피아)는 베드로전서에서도 이미 언급되었다(벧전 1:22; 3:8). 또한 신약성경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 덕목이다(롬 12:10; 살전 4:9; 히 13:1; 요일 5:1). 이방 세계에서는 이 단어가 혈육을 나눈 가족 간의 사랑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믿음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고후 1:4-7; 롬 12:10-13; 약 2:15-17; 고전 9:23; 10:16; 엡 3:6; 빌 1:7; 히 3:14; 12:10; 벧후 1:4; 막 10:45; 갈 5:13).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서 형제 사랑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 말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Ⅶ : 형제우애의 단계

성경적인 예 Ⅰ) 형제 사랑의 기본 원리(벧전 1:22)

1. 형제(兄弟)의 개념

1) 피로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2) 부모님을 통해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3) 의로써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4) 정(情)으로써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5) 혈통이나 가문으로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6) 믿음으로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7) 사제지간(師弟之間)으로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마 23:8-9).

8) 신령한 가족으로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마 12:50).

9) 공동체로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10) 같은 생각과 뜻과 관념으로 맺어진 집단이 형제이다.

2. 사랑의 기본 원리(벧전 1:22)

1)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전 1:12; 벧전 1:22

2)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눅 18:9-12; 마 23:23-33; 요일 3:18)

3)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1)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2) '뜨겁게' 하는 사랑이다.

(3) '피차' 나누는 사랑이다.

3. 형제 사랑의 의미(요일 3:10-12; 마 22:39,40).

1) 형제의 의미(창 4:2; 마 7:3; 롬 9:3; 요 1:3).

2)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는 중생한 자의 생활 태도(고후 5:17; 롬 6:4-11; 골 3:9,10;

요일 5:4; 롬 13:9,10).

3) 형제 사랑과 말씀의 실천(마 10:2-4; 마 22:37-40; 살전 4:9).

4) 마귀의 자녀와 구별하는 기준으로서 형제 사랑(요일 3:10)

3) 형제 사랑 방법(살전 4:9-10)

(1) 형제 사랑의 성격(살전 4:9; 요일 3:14,15-16)

(2) 형제 사랑의 본(살전 4:10; 행 17:11; 빌 4:10-19; 고후 8:1,2)

(3) 형제 사랑의 증거(살전 4:10)

4. 형제 사랑과 주를 섬김(롬 12:10-11)

1) 형제에 대한 사랑

(1) '형제'의 영적 의미; '친척'(창 31:54), '동족'(출 2:11), '동료'(왕상 13:30),

'동맹국'(암 1:9)

(2) 우애적 사랑(롬 12:10-11; 빌 2:3; 마 7:12; 눅 6:38)

2) 섬김에 대한 교훈

(1) 근면(잠 6:6; 12:11; 20:13; 고전 3:12)

(2) 열심(계 2:4; 계 3:15,16)

5. 형제 우애 방법

1) 가난한 형제를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출 22:25-27; 레 19:13; 25:13-17;

신 24:14-18; 사 33:14-16; 겔 18:7-9; 암 8:4-8; 미 2:2-4; 6:10-15;

슥 7:8-10; 말 3:5)

2)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욥 22:16-22; 신 10:18; 욥 29:12-13; 신 24:17)

3) 원수 같은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레 19:18; 눅 6:20-21; 6:27-36; 히 10:30).

4) 음식과 옷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신 15:12-15; 욥 22:5-7; 사 58:7; 마 25:34-36;

막 9:41; 롬 12:13).

5) 빚도 탕감해 주어야 한다(신 15:1-18; 마 18:23-27).

6) 가난한 형제를 도와야 한다(창 42:18-; 50:19-21; 욥 29 :11-16; 사 58:6-9;

마 19:21; 눅 6:30; 19:8; 롬 15:25-27; 엡 4:28; 약 2:14-17).

7) 구하는 형제를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마 5:42).

8)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마 6:12-15; 마 18:21-35; 고후 2:6-10; 갈 6:1).

9)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마 7:1-5; 눅 6:37-42; 약 4:11-12).

10) 형제를 실족시키지 말아야 한다(마 18:6; 롬 14:13-19; 고전 8:8-13).

11) 형제를 대접해 주는 것을 말한다(마 7:12; 롬 12:10).

12) 형제의 짐을 져 주는 것을 말한다(롬 15:1-2: 갈 6:1-2).

6. 성경에서 형제를 우애한 대표적인 인물들

1) 아브람이 그의 조카 롯을 우애(友愛)했다(창 12:5; 13:1-8).

2) 르우벤이 동생 요셉을 우애(友愛)했다(창 37:21-22).

3) 요셉이 그의 형제들을 우애(友愛)했다(창 45:1-5; 50:19-25)

4) 요나단이 다윗을 우애(友愛)했다(삼상 19:2-7).

5) 바울은 우애(友愛)를 했다(롬 9:2-3; 10:1; 고전 9:20-23).

6)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우애하고 살았다(갈 2:9).

7) 에바브로디도도 우애하고 살았다(빌 2:25-26).

8)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도 우애하고 살았다(살후 1:3)

7. 형제를 우애하지 않고 형제를 살해한 악한 자들

1) 가인이다(창 4:8).

2) 아비멜렉이다(삿 9:5; 삼하 13:28-29).

3) 솔로몬이다(왕상 2:23-25).

4) 여호람이다(대하 21:4).

8. 형제를 우애한 자들이 받는 축복

1)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막 9:41).

2) 예수님의 법을 성취하게 된다(갈 6:1-2).

3) 아름다운 관계를 만든다(시 133:1-3).

4) 대접을 받는다(마 7:12).

5) 천사를 대접하는 복도 받는다(히 13:1-2).

6) 자손이 복을 받는다(시 37:25-26).

7) 위급할 때 도움을 받는다(잠 17:17; 27:10; 18:24; 출 22:24).

8단계 : 영성 성숙 단계인 사랑의 단계

베드로후서 1:7에서 은혜 안에 성장시킬 덕목으로서 영적 성숙 단계인 사랑의 단계이다. 이 사랑의 단계(골 1:29)는 성숙에 의한 재생산(하나님의 형상)을 말한다. 성도가 갖추어야 할 인격 중 최고의 덕목이다. 영성의 최고의 목표이다. 영적 성숙한 자는 예수를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고, 마땅히 예수의 제자를 양육해야 된다. 조화를 이루며 사랑으로 완성함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룬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제자교육을 말한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고 주의 일을 하기 위함이다. '믿음'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덕목(영성 있는 제자의 영적 성숙 단계)이 '사랑'( ajgavph )으로 완성된다. '사랑'은 모든 덕목들 가운데 으뜸이며(고전 13장),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 보여주신 것으로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이루고자 하심이다(요 3:16; 롬 5:5,8; 요일 3:16; 4:8). 이와 같은 덕목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이 맺어야 하는 열매로서 바울이 언급한 '성령의 열매'(갈 5:22,23)와 '하나님의 사람'(딤전 6:11)이 갖춰야 할 덕목과 내용이 유사하다. 위의 모든 덕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점진적으로 얻을 수 있다. 각 덕목은 다른 덕목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생성되며 발전된다. 이런 덕목들은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하며 사랑으로 완성되어 가야 한다(골 1:4-11,23-29). 요한은 요한복음 3:16에서 '믿음-사랑'을 말하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13에서 '믿음-소망-사랑'을 말하며,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5-7에서 '믿음-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을 말한다.

* 은혜 안에 영적으로 성장시킬 덕목 Ⅷ : 사랑의 단계

성경적인 예 Ⅰ) 사랑의 열매(갈 5:23)

1. 사랑의 의미

1) 하나님이 사랑(아가파오)이다(요일 3:8)

2) 은혜(카리스")가 사랑이다(벧전 5:5)

3) 진리(알레데이아)가 사랑이다(요 14:6; 1:17)

4). 믿음(피스티스")이 사랑이다(히 12:2)

5) 생명(조에)이 사랑이다(요 11:25-26)

6) 긍휼(에레에오)이 사랑이다(약 5:11)

7) 선(아가토스)이 사랑이다(마 19:17; 막 10:18)

8) 영생(아이오니오스 조에)이 사랑이다(요일 5:20)

9) 소망(엘피스)이 사랑이다(롬 15:13)

10) 천국(바실레이아)이 사랑이다(마 3:2)

2. 일반적인 측면에서의 사랑의 정의

1) 오래 참는 것이다.

2) 온유한 것이다.

3) 투기하지 않는 것이다.

4) 자랑하지 않는 것이다.

5)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6)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다.

7)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이다(고전 13:5; 갈 6:2; 롬 14:7; 15:2; 빌 2:1 f).

8) 성내지 않는 것이다.

9)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10) 불의를 미워하는 것이다(롬 1:32).

11) 주는(Giving) 것이다(눅 6:38).

12) 존경(Respect)해 주는 것이다(롬 12:10).

13) 이해(understand)하는 것이다(골 2:2).

14) 용서(forgive)해 주는 것이다(눅 6:37).

15) 관심을 갖는 것 혹은 찾아오는 것이다(히 2:6; 눅 19:10).

16) 아껴 주는 것이다(시 91:14; 요일 4:7-8).

3. 성령충만한 은혜의 사랑

1) 성령충만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신 10:12; 11:1,13,22; 시 31:23;

요 5:42; 고전 16:22; 신 4:24; 4:28-31; 신 5:10; 6:4-5; 엡 6:24; 갈 5:13;

벧전 4:8; 요 14:15-24; 벧전 1:8).

2)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요일 4:11,20-21; 행 3:59-60;

막 12:31; 마 19:21; 요일 4:20; 3:18; 엡 5:2; (딤전 5:1).

3)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다(딤전 5:8; 엡 5:25; (골 3 :20).

4)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눅 6:27; 마 5:44-46; 롬 12:20).

5)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마 16:26).

6)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다(롬 9:3-5; 출 32:32).

7)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이다(레 19:34; 출 22:21; 신 10:18-19).

8)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다(시 122:6).

9)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롬 8:22).

10) 성령의 성품인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1) 세속적인 사랑

① 에로스(Eros)적인 사랑이다.

② 필레오(phileo) 혹은 필리아(philia)의 사랑이다.

③ 스톨게(storge)적 사랑이다.

이들 사랑은, ㉠ 자아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다.

㉡ 감정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다

㉢ 인간을 보편적(universally)으로 평등하게 다루지 못한다.

㉣ 인간을 수단 방편으로 사용한다

㉤ 참된 자유가 없다.

㉥ 때때로 진리와 정의를 거스린다.

㉦ 오래가지 못한다.

4.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16).

2)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이시다(요 3:16; 롬 5:6-8; 엡 5:1-2)

3) 성령님도 사랑의 영이시다(롬 5:5; 15:30)

4) 계명의 대지도 사랑이다(딤전 1:5; 요 13:34)

5) 신앙의 중심도 사랑이다(고전 13:13)

6) 교인의 본분도 사랑이다(요일 3:23; 마 18:35)

7) 심판의 표준도 사랑이다(마 25:34-46; 약 2:13)

5. 사랑의 우월성(고전 13:1-13)

1) 방언의 은사보다 우월하다.

2) 예언의 은사보다 우월하다.

3) 믿음의 은사보다 우월하다.

4) 구제의 은사보다 우월하다.

5) 순교의 은사보다 우월하다.

6) 살찐 고기를 먹으며 미워하는 것보다 우월하다(잠 15:17).

7) 사랑은 율법보다 우월하다(롬 13:8).

8) 믿음, 소망보다 우월하다(고전 13:13).

6. 사랑의 방법

1) 변함없이 사랑해야 한다(엡 6:24).

2) 넘치게 사랑해야 한다(고후 2:4).

3) 풍성하게 사랑해야 한다(고후 8:7).

4) 지극히 사랑해야 한다(시 119:167).

5) 진실하게 사랑해야 한다(요일 3:18).

6) 거짓없이 사랑해야 한다(고후 6:6).

7)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벧전 1:22).

8) 오래참음으로 사랑해야 한다(엡 4:2).

9) 서로 종노릇하므로 사랑해야 한다(갈 5:13).

10) 자기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마 22:39).

11) 계속적으로 사랑해야 한다(히 13:1).

12)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마 22:37).

13)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해야 한다(요 15:12).

14) 크게 사랑해야 한다(삼상 16:21).

15) 병나기까지 사랑해야 한다(아 2:5).

16) 덮어주므로 사랑해야 한다(벧전 4:8).

17)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요일 3:18).

18) 마음을 같이하므로 사랑해야 한다(빌 2:2).

19) 수고해 주므로 사랑해야 한다(살전 1:3).

20) 부담을 주지 않으므로 사랑해야 한다(롬 14:15).

21) 죽음같이 사랑해야 한다(아 8:6).

7. 사랑은 성도의 본분(요일 4:11)

1) 사랑은 뜨거운 것이다.

2) 사랑은 빛이다.

3) 사랑은 꽃이다.

4) 사랑의 본향은 영원이다.

8. 예수 제자교육의 원리(사랑의 기술) : 3T-ings 사역과 필수적 영역 24 Principles

1) 가르침의 분야(Teaching, 마 28:20)와 6가지 원리

① 반복의 원리(요 21:15-18).

② 권위의 원리(마 7:29).

③ 단순성의 원리.

④ 다양성의 원리(눅 21:1-4).

⑤ 인식의 원리(마 16:13-18).

⑥ 성경사용의 원리(눅 24:13-35).

2) 훈련 분야(Training, 마 28:20)와 4단계 10가지 원리

제1단계 먼저 제자삼는 자가 혼자 일함(마 4:17,22)

① 집중의 원리(눅 6:13-17; 막 10:45; 요 17:8,9).

제2단계 제자 있는 데서 제자 삼는 자가 일함

② 관찰의 원리(눅 8:41-48).

③ 모범의 원리(요13:15).

④ 동거의 원리(막 3:14; 요 11:54; 13:15; 마 20:17; 28:10).

제3단계 제자삼는 자 앞에서 제자가 일함

⑤ 이양의 원리(눅 22:24-32).

⑥ 무장의 원리(눅9:1-6 엡 6:10-20).

⑦ 포함의 원리(마 12:46-50).

⑧ 평가(막 9:18) 점검(보고; 눅 10:17-20) 감독의 원리(막 9:14-29).

제4단계 제자는 일하고 제자삼는 자는 물러섬(마 10:5-42):12제자 파송

⑨ 위임의 원리(막 3:14-16; 마 4:19; 10:5-11).

⑩ 재생산의 원리(요 15:16).

3) 성품(인격) 변화(Transforming, 요 13:34-35): 8 가지의 원리

① 헌신의 원리(롬 12:1-2; 마 11:29; 26:6-13).

② 중생의 원리(요 3:3-9; 20:22; 15:15; 17:4,8,14; 마 16:19; 눅 12:32).

③ 겸손의 원리(빌 2:5-8).

④ 영성의 원리(막 9:1-8; 행 26:18; 벧후 1:3-11).

⑤ 사랑의 원리(요 14:15; 요일 4:7-12).

⑥ 적응성의 원리(막 9:38-50).

⑦ 담대성의 원리(요 16:33; 행 9:27; 14:3).

⑧ 우정의 원리(요 15:12-17).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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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ovum Testamentum Grace, Deutsch Bibelgesellschaft Stuttgart,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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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우리말성경, 대한성서공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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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ing James Version(KJV)

3. Living Bible(LB)

4. Modern English Bible(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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